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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억울한 여자 - 반금련

기사승인 [468호]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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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보가 만연하고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에 가짜 뉴스가 전례 없이 성행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일시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겠으나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심지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엄중하고 위험한 사태를 불러온다.

그렇다면 과거 전화도 없고, 신문, 잡지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가짜뉴스가 없었을까? 아니다. 그 시대 가짜뉴스의 피해자는 요즘처럼 SNSTV화면에 등장하여 변명하고 해명할 길이 없어 한 번 당하면 영원히 매장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서양의 가족문화는 개인주의가 강한데 비해 동양의 가족문화는 집단성이 강하다. 서양인이 죄를 저지르면 본인 당사자가 책임지면 그만인데 비해 동양인이 죄를 지으면 가족 구성원에게도 죄를 묻는 연좌제가 만연하였다. 그래서 가령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가족 전체가 몰살당하거나 그 가문은 대대로 쓰레기 취급받는다.

중국에서 가짜뉴스 때문에 1,000여 년 동안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그 가문도 굴욕의 명예를 안고 대대로 살아온 사례가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반금련이다.

필자는 반금련을 역사상 가장 억울한 여자라고 변호하고 싶다.

중국문학사에서삼국연의』『서유기』『수호전』『홍루몽4대 고전명작으로 꼽는다. 그 중수호전은 기타 작품보다 인물묘사가 가장 뛰어나다. 108명의 영웅호걸들의 인물묘사도 가관이지만 여자들의 인물묘사는 가히 세계문학사에서 꼽힐 만큼 훌륭하다.

그런데수호전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대개 남자를 망치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손이낭(孫二娘)처럼 인육을 만두속에 넣어 파는 살인마의 모습이다.

 반금련은 제 손으로 무대랑을 독살하였고, 반교운은 애매하게 석수를 모함하였다. 염파석은 송강을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안달하였고, 백수영은 뇌형을 희롱하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그의 어머니까지 구타하였다. 가씨는 관청에 출두하여 남편 노준의를 무고하고 증인으로 나서 자칫하면 노준의는 죽을 뻔 했다.

반금련, 반교운, 염파석, 백수영, 가씨 등의 공통점은 미녀들이라는 것이다. 이녀들을 통해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미녀는 독부라는 것. 또 하나 더 매도한다면 미녀는 음란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금련의 자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른 봄 버들잎 같은 눈썹에는 언제나 운우의 정을 그리워하는 듯 한과 시름을 품고 있고, 춘삼월 복사꽃 같은 얼굴에는 은은히 바람기를 감추고 있었다. 가는 허리는 걸을 때마다 하늘거렸고, 도톰한 입은 향기를 뿜어 벌과 나비가 미친 듯이 날아든다.”

아마수호전을 읽어본 독자라면 전부 반금련이란 인물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나쁜 년이라고 속으로 돌을 던졌을 것이다.

수호전에 등장한 반금련이 얼마나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반금련과 서문경을 두 주인공으로 한 소설금병매가 시중에 나왔다.

금병매에 등장한 반금련은 음탕하기로 천하의 가장 나쁜 년으로 묘사되었고 서문경은 방탕하기로 천하의 가장 나쁜 사내로 그려졌다. 그런데 1961년 모택동 주석은 부성급 이상 간부들에게 반드시금병매를 읽어보라고 하명했다고 한다. 반금련의 사내를 홀리는 재주와 서문경의 여자를 잘 다루는 재주 및 문란한 연애스토리가 재미있어 그런 명을 내렸을까? 아니다.금병매는 송나라 정치, 경제, 문화를 잘 반영했는데, 송나라는 중국역사에서 자본주의맹아가 싹틀 만큼 호황이었으며 그때 이미 지폐가 등장할 만큼 세계적으로 앞자리를 달리고 있었다.

유감스런 것은 한국에서 출간된금병매버전들은 전부 아주 저급적인 삼류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국문학사는금병매를 명나라 4대 명작 중 하나로 꼽는다. 그만큼 가치가 풍부하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수호전금병매가 묘사한 반금련은 과연 역사상 가장 음란한 화냥년이고 남편을 독살할 정도로 독부였을까?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반금련,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여 년 동안 역사적으로 남아 내려온 반금련의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금련의 화냥년, 독부의 모습은 황당한 가짜뉴스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이다.

반금련은 청하현에서 매우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재산이 많을 뿐만 아니라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재산이 많은 가문은 하인을 고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요즘도 괜찮게 사는 집들이 가정부를 두는 것과 같다. 재산의 다소에 따라 하인을 많이 고용하나, 적게 고용하나는 문제일 뿐이다.

반금련 집안에 고용된 하인 중에 무대랑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청년이 된 무대랑은 신장이 7(180센티)이 되는 멋진 사내였다. 머리도 좋았다. 반금련의 아버지 눈에 비친 무대랑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하여 반금련의 부친은 싹수가 보이는 무대랑한테 투자해 공부를 시켰고 무예도 가리켰다. 무대랑은 과연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문무를 결합한 훌륭한 사내로 거듭났다.

당시 출세의 길은 진사(進士)에 합격하는 것이다. 무대랑은 진사에 합격하여 양곡현의 현령으로 부임했다. 1만호 이상 현의 장을 현령이라 부르고 1만 호 이하의 장을 현장이라 불렀으니 무대랑은 꽤나 큰 현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무대랑은 맡은 바 사업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남을 잘 배려하기로 유명했으며 아내 반금련을 몹시 사랑하는 애처가였다. 엄부(嚴父)의 슬하에서 자란 반금련도 남편 못지않게 여자로서 갖출 소양을 무람없이 갖췄고 남편의 내조를 잘하는 훌륭한 여인이었다. 무대랑과 반금련의 부부는 청하현과 양곡현에서 모두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한 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하현에서 어릴 적 친했던 짜개바지 친구 황당(黃塘)이란 자가 무대랑을 찾아왔다. 황씨는 집에 불이나 다 타 버려 무대랑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대랑은 별 말 없이 황씨를 잘 접대했다. 그런데 타버린 집에 대해선 가타부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황씨가 무대랑을 찾아온 목적은 한 끼의 산해진미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버린 집의 복구였다. 속이 재가 되도록 까맣게 타 버린 황씨는 무대랑의 침묵에 화가 치밀었다. 돌아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무대랑이 어떻게 나쁘다는 둥 그 마누라는 음란하기로 시동생인 무송과 여차여차하게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둥, 반금련이 무대랑을 잡아먹을 상이라는 둥 등등의 가짜소문을 지어내어 나발을 불었다. 당시는 교통이 불편해서 청하현에서 양곡현까지 왕복하려면 달포가 족히 걸렸다. 그 사이 도중에 숱한 사람을 만나 가짜뉴스를 터뜨렸다.

황당이 황당한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다.

황씨는 제딴에는 분풀이를 실컷 했다고 생각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 일인가? 잿더미로 타버린 집터에 멀쩡한 새집이 들어선 것 아닌가! 이때서야 황씨는 아차 싶었다. 무대랑에 대한 악담을 퍼부을 대로 퍼부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쏟은 물은 주워 담지 못하는 법이다. 황당이 황당하게 퍼부은 가짜 악담은 달포 사이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듯 청하현과 양곡현을 뒤덮었다.

얼마 후 무대랑은 죽었다.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명나라 초기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가 세상에 등장했다.삼국지를 지은 나관중,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수호전을 펴낸 시내암은 소설 스토리를 일부는 사서에 의존하고 일부는 장터에서 이야기로 밥벌이 하는 이야기꾼들의 민간전설로 내려온 것을 각색하여 소설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소설 반 이상의 스토리는 실제 역사사실이 아닌 문학적인 허구일 수밖에 없다. 시내암은 황씨가 퍼뜨렸던 가짜뉴스가 수백 년 동안 전해오면서 가미된 것을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수호전을 짓다보니 반금련을 완전히 화냥년에다 천하의 독부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이중탠 교수는삼국지를 말하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역사인물은 역사 이미지, 문학 이미지, 민간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삼국연의를 예로 든다면 조조는 역사 이미지에 가깝고, 제갈량은 완전히 문학 이미지이고, 관우는 민간 이미지다. 반금련은 어떤 이미지에 속할까? 한심한 문학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문학 이미지는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소설가는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 수 있고 병신을 영웅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무대랑은 아주 훌륭한 사나이였는데 시내암의 붓 끝에 묘사된 무대랑은 난장이, 시장터에서 호떡이나 팔아 생계를 겨우 이어가는 무능한 사나이, 무능하다 못해 아내 하나 건사 못하는 병신으로 둔갑되었던 것이다.

반금련의 말이 나온 김에 서문경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과거 알았던 서문경은 한심한 건달, 카사노바를 뺨 칠 바람둥이, 눈에 거슬리는 자를 무차별 폭행하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악마 등등의 모습인데 역사적인 서문경은 그런 또라이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잘 나가는 사나이였다. 그는 청하현 도읍에서 가장 큰 약국을 운영하여 아주 부유하게 살아가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대 초반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서문경은 20대 초반에 가업을 이어받았는데 수완이 뛰어나 가업을 나날이 번창시켰다. 당시 부자는 모두 삼처사첩(三妻四妾)을 거느리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기방출입을 밥 먹듯 하는 세상이었다. 돈 많은 서문경도 예외일 수 없었다. 처첩을 두고도 처첩의 시중을 드는 하녀를 건드리고 기방출입도 하루건너였다. 어디에 예쁜 여자가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그녀가 처녀이든 타인의 아내이든 관계치 않고 집적거렸다.

요즘 같으면 서문경과 같은 이런 사내가 크게 문제가 되지만 그 시대에 있어서 별로 시빗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서문경은 가게 운영 노하우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도 매우 훌륭했다. 그의 주변에는 건달 양아치부터 관료에 이르기까지 사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늘 붙어 있었다. 정치수완도 뛰어나 청하현 副獄長 자리까지 올랐다. 당시 옥장은 서문경의 세력에 밀려 명의만 있었을 뿐 실권은 서문경이 갖고 있었다. 그 때는 사법체계가 완비되어 있지 않아 그때 서문경의 권력은 오늘의 법원, 검찰, 경찰이 갖고 있는 권한을 전부 한 손에 움켜쥐고 있으면서 청하현의 천하는 서문경의 손바닥에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잘 나가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서문경은 흑도(黑道), 백도(白道)에 모두 바싹한 사내였다.

필자는 진보당의 여러 거물들의 성 사건이 터지자 30~40년 전에 읽었던금병매라는 책을 다시 들었다. 수십 년 전 그때는 몰랐던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 있다. 서문경은 헤아릴 수 없이 그 수많은 여자를 건드리면서 빠뜨림 없이 전부 금전적으로 보상해주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두 번째 부인 이병아가 도망가자 그녀의 하녀 수춘이를 잡아다 이병아의 행방을 추구하던 중 성욕이 발작하여 미성년 수춘이를 건드린다. 그러고 나서 서문경은 은전을 두둑이 수춘이 손에 쥐어준다. 이것으로 먹고 살라고. 본래 서문경의 권세를 말하자면 수춘에게 보상해주지 않아도 별 시빗거리가 아니고 수춘이도 풀려나오기만 하면 만세일 뿐 돈은 전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서문경은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남녀 간의 그 일을 가벼이 넘기지 않고 모든 여자에게 철저하게 보상해주었던 것이다.

얼마나 멋진 사나이인가!

웃기는 구호인 줄 알면서도 대한민국 사내들이어, 서문경을 따라 배우자!’라고 외치고 싶다.

 

 

 

김정룡 가치포럼대표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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