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삼국지> 재해석(26)

기사승인 [448호] 2021.10.01  

공유
default_news_ad1

- 오나라 선조 손견

나관중의 소설삼국연의는 당시 천하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위나라를 양적으로는 먹물을 많이 할애했으나 질적으로 따져보면 위··오 삼국 중에서 촉나라에 가장 편애하여 지었다.

   

당시 실제역사사실은 어떠했을까?

역사가 진수는삼국지를 지으면서 위나라가 차지하는 분량이 촉과 오에 비해 두 배 정도 많고 촉의 분량은 오나라에도 못 미친다. 진수는 촉나라 사람이며 촉나라에서 관각령사(觀閣令史)의 벼슬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오나라 역사를 촉나라 역사보다 분량을 더 할애한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실제역사사실을 볼 때 촉나라보다 오나라의 비중이 더 컸을 수가 있고, 다른 하나는 촉나라에는 전문 역사를 짓는 사관이 없었던데 비해 오나라는 손권 집권 후반기에 정부(丁孚)와 항준(項俊)에게 오서편찬을 명령했고 이 두 사람의 재능이 여의치 않아 소제 손량(孫亮) 때 다시 위요(韋曜)를 주축으로 하여 과거의 일을 찾아 함께오서55권을 편찬해냈다. 진수가오서를 집필하면서 위요의 사료를 바탕으로 많이 참조했다.

여기서 이 에피소드를 들먹이는 이유는 오나라의 역사가 촉나라 역사에 비해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싶기 때문이다.

   

오서손견전 첫머리에 손견은 자가 문대(文臺)이고 오군(吳郡) 부추(富春) 사람이며 손무의 후손인 듯하다.”고 기재했는데 이것은 예수의 족보를 아브라함에게 갖다 대는 것처럼 황당하다. 조조는 환관집안이란 신분이 천하지만 부와 권력을 거머쥔 가문에서 금수저로 태어났다. 유비는 황족의 후예라는 아주 명분이 좋은 신분을 갖고 있었다. 이 두 사람에 비해 손견은 강동의 하나의 호족에 불과했으며 사회적으로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가문에서 태어났다.오서비빈전 기록에 의하면 손견이 오씨 녀의 뛰어난 재능과 아름다운 외모를 듣고 청혼했다. 오씨의 친척들은 손견의 경솔함과 교활함을 혐오하여 그의 구혼을 거부했으므로 손견은 매우 부끄럽고 원통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오 부인이 친척들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한 여자를 사랑함으로써 화를 불러일으키겠습니까? 제가 만일 시집가서 불우해진다면 그것은 제 운명입니다.”

그러자 친척들도 마침내 결혼을 허락했다. 그녀는 41녀를 낳았다.

손견이 어린나이에 현의 관리가 된 것을 보면 오 씨 집안의 평가처럼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 꽤나 싹수가 보이는 사나이였다. 17세 때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전당현(錢唐縣)에 이르렀는데 마침 해적이 상인들의 재물을 빼앗아 해변가에서 막 나누고 있었다. 행인은 모두 걸음을 멈추었고 배는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손견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도적들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저들을 토벌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대적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손견은 칼을 쥐고 해안으로 올라가 손으로 동쪽과 서쪽 을 지휘했는데 마치 부서의 병사와 말을 나누어서 도적을 막는 모습 같았다. 도적들은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관병들이 자신들을 붙잡으러 온 줄 알고 곧바로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손견은 그들을 뒤쫓아 도적 우두머리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매우 놀랐다. 이 때문에 손견은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었고 군부(郡府)에서는 그를 서리(署吏) 교위(校尉, 교육부 교관)로 임명했다.

그 후 손견은 전후로 염독현, 우이현, 하비현 등에서 승(, 만호 이상의 현 오너를 현승이라 부르고 만호 아래 현의 오너는 현장이라 불렀음)으로 부임했다.

기원 184년 장각이 이끈 황건적난이 일어났다. 무려 36만의 대군이었으니 무능한 조정은 체계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의병을 일으켜 황건적난에 맞섰다. 이 때 손견도 전공을 크게 올렸고 그 공을 인정받아 별부사마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변장(邊章)과 한수(韓遂)가 양주에서 소요를 일으키자 중랑장 동탁이 토벌하여 막으려 했지만 전공이 없었다.

2년 후 사공(司空) 장온(張溫)이 직접 서쪽으로 가서 변장 등을 토벌하게 되었다. 손견이 군사에 능하다는 소문을 들은 장온은 조정에 표를 올려 손견을 군사로 삼았고 장안(章安)에 주둔케 했다. 그때 장온은 동시에 동탁을 불렀으나 동탁은 매우 오랜 시간이 지자서야 나타났다. 장온이 군율을 어긴 동탁을 꾸짖자 동탁은 오히려 불손한 태도를 드러냈다. 같은 장소에 있던 손견이 화가 나서 장온에게 귀띔으로 말했다.

동탁은 죄지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나움과 위세를 떨치며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부름을 받았는데도 제때에 이르지 못한 죄에 군법을 적용하여 마땅히 그 목을 베어야만 합니다.”

장온이 말했다.

동탁은 평소 농서군과 촉군 사이에서 위엄과 명성을 떨치고 있소. 오늘 그를 죽인다면 내가 서쪽으로 나아가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되오.”

손견이 말했다.

명공께서는 천자의 대군을 직접 이끌어 천하에 위세를 떨쳤는데 어찌 동탁에게 의지하려 하십니까? 동탁이 말하는 모양을 보니 명공께 예의가 없습니다. 위에 있는 이를 경시하고 예의가 없는 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변장과 한수가 제멋대로 날뛴 지 1년이 지났기에 때에 맞춰 병사를 출동시켜 토벌하려고 했지만 동탁은 병사를 출동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군사행동을 방해하고 민심을 미혹하게 한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동탁은 임무를 받았으나 공이 없고 부름을 받았으나 급히 오지 않았으며 태도도 매우 오만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고대의 명장들은 월(, 명령을 위반한 자를 죽일 수 있는 권위를 갖는 大斧)을 쥐고 군대를 지휘할 때 머리를 베는 방법으로 위세를 나타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명공께서 동탁을 마음에 두고 바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엄격한 군법을 손상시키는 일이 여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장온은 차마 동탁에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곧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잠시 돌아가시오. 동탁이 앞으로 의심하게 될 것이오.”

손견이 장온의 군사로 참여하게 되자 변장과 한수의 군대는 사기가 저하되어 싸우지 않고 도망갔다. 싸우지 않았으니 전공도 없다하여 논공행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손견이 장온에게 동탁의 머리를 베도록 권유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신들은 모두 찬탄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에는 가설을 허용하지 않지만 그 당시 장온이 손견의 제의에 따라 동탁을 죽였다면 한나라 말기 정치형세는 그토록 대혼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 역사실은 장온이 동탁을 살려두는 바람에 동탁이 조정을 쥐락펴락했고 황제마저 갈아 치우는 패륜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동탁의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행위에 분개하여 전국적으로 반동탁연맹이 결성되었고 원소가 맹주를 맡았지만 동탁토벌에 가장 공이 큰 자가 바로 손견이었다.

손견은 동탁토벌에 걸림돌이 되는 자를 가차 없이 제거했다. 손견의 대군이 남양군에 이르자 남양태수 장자(張咨)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손견이 소와 술로 예물을 삼아 장자를 초대했고 장자는 다음날 손견을 방문했다. 두 사람의 술판이 끝나갈 무렵 주부(主簿)가 손견에게 보고했다.

저희 군대가 앞으로 나아가 남양까지 갔지만 도로가 닦이지 않았고 군수물자도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남양 주부를 체포하여 그 까닭을 물으시기 바랍니다.”

장자는 매우 두려워 도망가려고 했지만 병사들이 사방에 가득 차 있으므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잠깐 뒤에 주부는 또 들어와 손견에게 보고했다.

남양 태수는 의로운 병사를 막아 적군을 제때에 토벌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를 붙잡아 군법대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손견은 곧바로 장자를 군문에 매달아 목을 베게 했다. 군의 관원들은 놀라 두려워 떨며 손견이 무엇을 요구하든 간에 들어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손견이 노양현(魯陽縣)에 이르러 원술을 만났다. 원술은 손견과 친한 사이인지라 표를 올려 손견에게 파로장군(破虜將軍)을 대신하게 하고 예주 자사를 겸하도록 했다. 그래서 손견은 노양성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었다. 한편 원술은 대부자로서 군량미를 많이 확보하고 있고 손견에게 대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손견이 직접 동탁토벌에 한창 필요할 때 원술은 군량미를 대주지 않았다. 누가 가운데서 이간질 했던 것이다. 화가 난 손견은 1백여 리 길을 밤새에 달려 원술을 만났다.

우리가 몸을 던지고 나아가 개인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은 까닭은 위로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집안의 사사로운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동탁과 골육지친의 원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참언하는 말을 듣고 오히려 저를 의심한단 말입니까?”

원술은 결국 손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손견의 부대가 강하다는 것을 동탁은 이각(李傕) 등을 보내 화친을 구하면서 손견에게 자제 가운데 자사나 군수로 임명하고 싶은 자를 열거하면 표를 올려 임용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에 손견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동탁은 하늘을 거스르고 도가 없어 왕실을 뒤엎었다. 만일 너희 가문의 삼족을 멸하지 못하여 천하에 나타나게 한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텐데 어찌 너와 화친을 하겠느냐?”

손견은 거침없이 낙양으로 진군하여 동탁을 물리쳤고 동탁은 수도를 장안으로 옮겨갔다. 동탁이 자신의 입지가 막다른 골목에 가까워지자 제왕들의 능묘를 파헤쳐 금은보화를 챙겨갔고 도망갔다. 손견은 동탁이 파헤쳐 폐허가 된 능묘들을 보수하고 정돈했다.

   

소설삼국연의에서 손견이 궁정 우물에서 전국옥쇄를 발견하여 간직하고 있다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손책이 그것을 대가로 원술한테서 군대를 빌고 원술은 그것을 갖고 스스로 황제를 참칭하여 용포를 입었다고 했는데 이런 스토리들은 사서에는 없다. 저자 나관중이 재미를 위해 문학적으로 지어낸 것들이다.

어찌 되었든 손견은 동탁을 무찌른 영웅으로서 당시에는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꽃길만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수명은 매우 짧았다.

원술은 손견을 시켜 형주를 정벌하고 유표를 치게 했다. 유표는 황조를 보내 번성과 등성 사이에서 맞서 싸웠다. 손견은 황조를 격파하고 추격하여 한수를 건너 마침내 양양을 포위했다. 손견은 말을 타고 현산(峴山)을 순시하다가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손견에게는 손책, 손권, 손익, 손광 등 아들이 넷 있었다. 손견이 죽고 나서 장자인 손책이 뒤를 계승했다.

김 정 룡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저작권자 © 동포타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