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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래영수들에게 바치는 글 11

기사승인 [448호]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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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의 ‘호통회견’ ‘분노회견’

민주당 경선 초기 정세균의 이재명에 대한 여배우스캔 질문에 이재명이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말해 필자가 이재명의 행위를 필부의 분노라고 명명하고 이를 주제로 칼럼을 쓴 바가 있다.

요즘 호통 회견’, ‘분노회견이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떠돌고 있다. 그 주인공은 윤석열이다. 앞뒤 전후 맥락은 이렇다. 여당 의원과 유시민 작가 및 언론인 고발사주 의혹 사건이 불거졌는데 윤석열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윤석열이 기자회견을 요청했는데 한 나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감정통제가 되지 못해 15분 내내 차마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분노를 폭발하고 호통 쳐 호통회견’ ‘분노회견라는 말이 생겨났다.

윤석열의 분노는 참으로 이재명의 분노를 뺨칠 정도로 가히 폭발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재명의 분노는 윤석열의 분노에 비해 그 폭발 정도가 가히 양반수준이라는 것이다.

권력의 법칙저자 로버트 그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결국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연출하게 마련이다. 이들은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자신에게 가해진 상처나 모욕을 과장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균형 감각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모욕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가장 터무니없는 오해는 화를 폭발시키는 것이 곧 권력이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사나운 행동은 권력이 아니라 무력하다는 표시다. 당신이 분노를 폭발시키면 사람들은 때때로 겁을 먹기도 하겠지만 결국 당신은 존경심을 잃을 것이다. 또 그토록 통제력이 없으니 몰래 해를 가하기도 쉬울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노를 쉽게 또 가볍게 표출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가?

모택동 주석은 역사의 경험에 주의할 바가 있다(歷史的經驗値得注意).”는 말씀을 자주 했다. 필자는 동서양의 고전으로 현재 한국정치인들 및 특히 대통령이 반드시 갖춰야할 소질(통치술)을 시리즈로 쓰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18091월 나폴레옹은 스페인 전쟁을 치르다말고 서둘러 파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스파이와 심복들에 따르면 외무장관 탈레랑이 경시총감 푸세와 모반을 꾀했다는 소문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황제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장관들을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장관들이 도착하자 곧바로 회의를 열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반역자들이 자신에 대항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투기꾼들은 주식시장을 폭락시키고 있으며 입법가들은 자신의 정책을 지연시키고 있으며 자기 밑의 장관들은 몰래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폴레옹이 이야기하는 동안 탈레랑은 무관심한 얼굴로 벽난로 선반에 기대어 있었다. 나폴레옹은 탈레랑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장관들이 마음속에 의심을 품는 순간 반역은 시작되는 거요.”

황제는 반역이란 말에 탈레랑이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탈레랑은 지루하다는 듯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반역죄로 목이 달아날 판인데도 장관이 전혀 동요하지 않자 나폴레옹은 약이 올랐다. 그래서 장관 중에 자신이 죽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서 탈레랑에게 한 발 다가섰다. 탈레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황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황제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탈레랑의 얼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 겁쟁이에 믿음이라곤 추호도 없는 자 같으니. 당신이 신성하게 여기는 건 하나도 없지. 자기 아버지도 팔아버릴 작자 같으니라고! 내가 재물을 그렇게나 많이 주었는데 이제 나를 해치려 들다니.”

나머지 장관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럽 대부분을 정복한 두려움 모르는 장군이 그토록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유리처럼 박살나도 싸.”나폴레옹은 발을 구르며 말을 이었다.

내겐 그럴만한 힘이 충분히 있어. 하지만 당신에겐 그렇게 하는 것도 아까워 튈르리 궁전에서 참수시켜야 하는 건데. 하지만 시간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어.”

씩씩대며 고함을 지르는 나폴레옹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당신은 비단 양말만 신었지 머저리나 다름없어. 자네 아낸 또 어떻고? 상 카를로가 자네 아내의 애인이란 얘긴 나한테 안 했지?”

폐하. 그건 폐하께나 저에게나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탈레랑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나폴레웅은 몇 번의 모욕을 더 주더니 회의실을 나갔다. 탈레랑은 절름거리는 특유의 발걸음으로 천천히 방을 가로질렀다. 하인이 외투를 입혀 줄 때 그가 동료 장관들을 보고 말했다.

여러 분. 장말 가엽지 않소. 그렇게 위대하다는 사람이 매너는 저렇게 형편없다니.”

나폴레옹은 외무장관을 체포하지 않았다. 그를 해임시키고 궁정에서 축출하는 것에 그쳤다. 탈레랑 같은 사람에겐 모욕을 주는 게 가장 큰 응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탈레랑을 오래도록 몰아세웠다는 소문이 금세 퍼졌다. 당시 황제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지만 탈레랑은 평정과 위엄을 잃지 않고 오히려 황제에게 굴욕을 주었다는 식이었다. 그 일로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탈레랑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종말의 시작이었다.”

역사가들도 정말로 그때가 종말의 시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원전 4세기 병가로 손꼽히는 손자 왈, “군주는 화 때문에 군대를 출정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고 지도자는 분노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교적인 교육을 받은 사회에서는 조조보다 유비를 더 좋아하고 찬양한다. 그런데 유비는 아마손자병법을 읽어보지 못했는지 분노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맹세한 관우가 손권의 손에 먼저 죽는다. 유비는 관우의 죽음에 분노하여 복수하려고 손권 토벌전쟁을 일으킨다. 참모들이 ‘우리의 적은 손권이 아니라 조조라고 간언했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다유비에게 있어 관우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조운(趙雲)과 진밀(秦宓등도 보복전쟁은 불가함을 강하게 개진하였지만 유비를 더욱 화나게만 하였다. 결과는 홧김에 일으킨 전쟁이 승리할 리가 만무했다. 이 전쟁을 역사는 이릉전투라고 명명하는데 삼국시대 3대 전쟁에 속하는 어마어마한 전쟁이었다. 전쟁의 규모가 크면 패배자의 상실감은 더 크기 마련이다. 유비는 이 전쟁에서 패하자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금세 죽음을 맞이한다.

분노는 감정적 대응 가운데서도 가장 파괴적이다.”

유비의 라이벌이었던 조조는 분노를 어떻게 조절했는가?

건안 5(200) 원소와 조조가 관도대전을 벌였다. 이 전쟁은 삼국시대 세 번의 대전 가운데 첫 전쟁이었다. 조조의 책사들이 장군 몇몇이 적군과 내통한 편지를 발견하고서 이들을 붙잡아 처형시킬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조조는 편지들을 불살라 버리고 그 일을 다시 거론하지도 말고 모두 잊으라고 명했다.

나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처지야 더 급박했을 것이다. 인간이란 생존을 위해 살길을 찾으려는 것이 본능인데 그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얼마나 멋진 용서인가!

역사가들은 조조의 용서를 이렇게 평가했다. 전투가 한창인 이 중대한 시기에 진영을 들쑤셔 시시비비를 가려서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화를 내면 장군들의 배반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고 그러면 군대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었다. 시시비비는 나중에 따지고 혐의가 있는 장군들은 적당한 때에 처리하면 된다. 조조는 이성을 잃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나름대로 맞는 평가라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용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조조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다른 지도자에게는 정말 바라기 어려운 일이다.

왜 조조가 황하대륙의 3분의2를 차지했고 유비는 한 모퉁이만 차지하고 있다가 제 명에 죽지 못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비교가 아닌가 싶다.

분노를 폭발하면 이성을 잃게 마련이고 이성을 잃으면 할 말 하지 말아야 될 말을 가리지 못하고 내뱉는다. 홧김에 내뱉는 말은 수습이 안 되어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 수가 있다.

1825년 니콜라이 1세가 러시아의 새 황제에 즉위했다. 그 직후 러시아의 근대화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러시아가 산업과 사회기반 전반에 걸쳐 유럽 국가 같은 모습으로 재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콜라이 1세는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후에 그 주동자인 콘드라티 일레예프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사형이 예정된 날 릴레예프는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 교수대 위에 섰다. 발밑의 뚜껑 문이 열리는 순간 릴레예프는 허공에 매달렸지만 조금 후 밧줄이 끊어지면서 몸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신의 뜻이라고 여겨 사형을 면해주었다. 릴레예프는 타박상 입은 몸을 땅에서 일으키면서 자신이 무사함을 깨닫고 군중을 향해 외쳤다.

보시오. 러시아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질 않소. 밧줄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다니!”

사자가 황제가 있는 겨울궁전으로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다. 니콜라이 1세는 크게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형을 면하는 사면장에 서명을 하려고 했다. 그때 황제가 사자에게 물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릴레예프가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러자 사자가 대답했다.

폐하. 그는 러시아아가 밧줄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황제는 사면장을 찢어버렸다. 다음날 릴레예프는 다시 교수대에 섰다. 이번에는 밧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윤석열 분노 회견에 대해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대응 기자회견을 두고 "교양도, 품위도 없고 정말 창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SBS 예능프로 집사부 일체프로그램에 윤석열이 출연했다. “대통령만 보면 싸우고 싶나?”는 질문에 윤석열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를 공격해주면 꼭 지지율이 오른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대선후보. 그는 아마 분노의 폭발에 의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 같다.

김 정 룡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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