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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22)

기사승인 [444호] 202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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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의리의 아이콘 관우

삼국시대 수많은 영웅들 중에 관우만큼 신이 되어 후세 사람들의 우상으로 모셔진 인물이 없다. 중국인의 민간의 관우 숭배는 신앙과 풍속으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우선 관우는 재신(財神)으로 숭배 받고 있다. 관우는 평생 전쟁터를 누비며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아니다. 관우가 전신(戰神)이라면 말이 되겠지만 재벌도 아닌데 재신이라니? 아마 장사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관우의 의리를 숭배하여 그를 재신으로 받드는 것 같다. 이 해석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관우가 재신인 것은 그나마 그의 의리 때문에 말이 되지만 그가 이발사들의 수호신이 된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나라 때는 남자들이 머리를 깎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우가 이발사였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후세 이발사들의 수호신이 되었는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 청대(淸代)의 한 이발소 문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 있었다.

천하 사람들의 머릿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면 내가 지금껏 휘두른 칼솜씨가 어떠했는지를 봐라.”

일설에 의하면 이 말은 태평천국의 장수인 석달개(石達開)가 영웅호걸을 모집하기 위해 위장으로 이발소를 차려놓고 이발소 문앞에 써 붙였다고 한다. 이중텐 교수는 오히려 이 말이 관우의 말투를 달은 것 같다고 했다.

중국 어떤 결혼중개소에서 관우를 받드는 경우도 있는데 관우는 또 애정의 신으로 숭배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관우가 애정의 신이 된 데 대해 충분한 근거는 없지만 약간의 근거는 있다. 사서에 의하면 관우는 일찍 한 여인을 사랑했는데 한두 차례 조조에게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이 말이 퍼진 이후 조조는 여자가 필시 대단한 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맞이하여 만났는데 과연 경국지색인지라 자신이 그 여인을 붙잡아 차지하게 되었고 관우는 이 일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 한 여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남자는 세상에 많고도 많을 텐데 굳이 관우가 애정에 대한 욕구가 집요했다고 그를 애정의 신으로 받드는 것은 관우라는 인물이 그만큼 민간에 널리 또 크게 깊숙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비는 동서남북을 전전하며 주인을 다섯 번이나 바꾸다 보니 정말 갖은 고초를 다 겪었다. 그러나 유비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갔다. 유비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관우와 장비의 덕이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관우와 장비는 황건적 토벌 시에 유비를 만난 이후 줄곧 배신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유비를 떠나지 않았다.

   

진수의 <삼국지> 관우전에 이르기를, “유비는 잠 잘 때도 두 사람과 함께 했으며 정이 형제 같았다.”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그럼 그들의 아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고 토를 달며 농담의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필자는 이 세 형제의 정이 그만큼 끈끈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고 이해하고 싶다.

건안 5(200) 조조가 동쪽 지역 정벌에 나서자 유비는 원소에게로 달려갔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관우는 조조에게 포로 되었다. 조조는 관우가 대단한 장군인지라 편장군으로 삼고 매우 후하게 예우했다.

조조는 관우를 두고두고 오랫동안 크게 활용할 타산을 했지만 관우는 조조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유비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냥 도망가기는 장수로서 체면이 아니라 생각하고 조조에게 묵직한 공을 세워 은혜를 갚고 보기 좋게 떠나려고 맘을 먹고 있었다. 조조가 이를 눈치 채고 장료에게 부탁했다.

그대가 관우와의 정에 기대어 물어보시오?”

장료가 관우에게 묻자 관우는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나는 조공이 나를 후하게 대우해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 장군에게 깊은 은혜를 받았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그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나는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없으며 공을 세워 조조에게 보답한 뒤에 떠날 것입니다.”

장료가 관우의 말을 보고하니 조조는 그가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소가 대장군 안량(顔良)을 보내 백마에서 동군 태수 유연(劉延)을 치게 했는데 조조가 장료와 관우를 맨 앞에 세워 공격했다. 관우는 안량의 깃발과 수레덮개를 멀리 바라보다가 말에 채찍질을 하여 1만 명의 대군 속에 있는 안량을 찌르고 그 머리를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장수 가운데 관우를 당해낼 자가 없으므로 곧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조조는 곧바로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로 봉했다.

한편 관우가 안량을 죽이자 조조는 관우가 틀림없이 떠날 것을 알고 두터운 상을 내렸다. 관우는 조조가 내린 상을 모두 봉하고 고별의 편지를 써놓고 유비에게로 달려갔다. 조조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뒤쫓으려고 했지만 조조가 말렸다.

사람은 각자 자기 주인이 있으니 쫓지 마시오.”

관우도 멋진 남자지만 조조도 더 멋진 사나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관우는 남자 중의 상남자였다. 그는 일찍이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왼쪽 팔이 꿰뚫린 적이 있었다. 나중에 상처는 비록 다 나았지만 구름이 잔뜩 낀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으레 뼈에 통증이 왔다. 의원이 말했다.

화살촉에 독이 있었는데 그 독이 뼛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팔을 찢어서 뼛속의 독소를 없애면 통증이 사라질 것입니다.”

관우는 곧 팔을 펴고 의원에게 째도록 했다. 그때 그는 마침 장수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열어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팔에서 나는 피가 흘러 떨어져 그릇에 그득했지만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을 마시며 평소처럼 웃으면서 말을 했다.

   

얼마나 멋진 사나이인가!

이렇듯 대범한 사나이도 그토록 자신이 충성을 다 비치는 유비에게 티격태격 다툴 때가 있었다.

유비가 허도에 있을 때 조조와 함께 사냥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사냥하면서 이리저리 흩어지게 되었다. 관우는 유비에게 조조를 죽이기를 권했지만 유비는 따르지 않았다. 하구에 이르러 장강의 기슭을 떠도는 신세가 되자 관우는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지난날 사냥할 때 제 말의 따랐다면 오늘 이 어려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역시 나라를 위해 그를 아꼈을 뿐이오. 천도가 정의를 돕는다면 어찌 복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겠소!”

유비는 나중에 동승 등과 결탁하여 조조를 죽일 음모를 꾸몄지만 일이 누설되어 이루지 못했다. 만일 나라를 위해 조조를 아꼈다면 이 같은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우는 때로는 상남자답지 못하게 질투도 심했다. 마초가 투항해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찍이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마초의 인품과 재능이 누구와 비교할 만한지 물었다. 제갈량은 우위를 지키려는 관우의 마음을 알았으므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맹기(孟起, 마초의 자)는 문무를 고루 갖추었으며 용맹함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당대의 걸출한 인물로서 한나라의 경포(黥布)나 팽월(彭越) 같은 부류로 익덕(益德, 장비)과 나란히 선두를 다툴 수 있지만 미염공(美髥公, 관우의 수염이 아름다워 제갈량이 그를 부른 말) 당신의 걸출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관우는 제갈량의 편지를 받고서 흐뭇해하며 시름 놓게 되었다.

건안 24(219) 황충은 한중 정군산에서 조조의 맹장 하후연의 목을 벴다. 이는 유비진영에게 있어서 매우 뜻밖의 큰 전공이었다. 유비는 황충을 정서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이해에 유비는 한중왕이 되어 항충을 후장군으로 임용하려고 했다. 제갈량이 관우의 질투가 걱정되어 유비를 설득하여 말했다.황충의 명망은 평소 관우나 마초와 같은 서열이 아니었는데 오늘 같은 반열에 두려 하십니까? 마초와 장비는 가까이 있으면서 황충의 공로를 직접 보았으므로 폐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우는 멀리서 이 소식을 들으면 아마 틀림없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황충을 이처럼 안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유비가 말했다.

제가 직접 그에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황충을 관우 등과 지위를 나란히 하여 관내후 벼슬을 내렸다.

관우에게는 하나의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아랫사람을 잘 다독이면서 배려하지만 사대부를 무시하는 것이다.

건안 24(219) 관우는 번성에서 조조의 장수 우금과 조인을 물리치자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조조는 걱정되어 사마의와 장제를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이 두 사람은 관우가 더 커지는 것을 손권의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을 테니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다스리도록 하면 번성의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권이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관우가 사자를 모욕하고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손권은 무척 화가 났다. 남군 태수 미방(麋芳)이 강릉에 있고 장군 사인(士仁)이 공안에서 주둔했는데 평소 관우가 자신들을 경시했으므로 싫어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대주었는데 힘을 다해 돕지 않았다. 관우가 이를 알고 격하게 말했다.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겠다.”

미방과 사인은 두려워 손권을 도왔다. 이때 조조가 서황(徐晃)을 보내 조인을 돕게 해 관우는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손권은 미리 강릉에 도착하여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으므로 관우의 군대는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그 아들 관평(關平)을 참수했다. 본래 손권은 관우를 살려주어 유비가 조조의 적수가 되게 하려고 하자 측근들이 이렇게 말했다.

이리 새끼는 기를 수 없습니다. 훗날 틀림없이 해를 끼칠 것입니다. 조조가 곧바로 그를 제거하지 않을 테고 스스로 큰 혼란을 부르게 되며 천도를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어찌 그를 살려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여 곧 목을 베었다.

   

관우는 조조의 모사 정욱의 말대로 1만 명을 상대할 힘을 가진 뛰어난 장수였지만 제갈량이 관우의 공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고 형주를 8년이나 지키게 하였고 그 동안 관우는 자신의 재주를 부릴 기회가 없었다.

장수는 싸움터에서 장끼를 발휘하거늘 제갈량의 견제에 의해 관우는 후반생에 이렇다 할 만 한 전공이 별로 없었다.

관우의 생애를 살펴보아도 모사의 역할로 묘한 계책을 꾸며 유비 진영이 천하에 크게 영향을 끼치게끔 한 것도 없이 그냥 일선에서 뛰어난 장수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관우의 최대 장점은 의리였기 때문에 그는 이 하나로 신이 되어 역사에 길이길이 빛나게 되었던 것이다.

김정룡‘多가치포럼’대표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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