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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민족의 바탕이고 혼이다

기사승인 [416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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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세상이나 인정을 비판하고 풍자로 사람을 웃기는 것을 우리는 만담이라 한다.

만담하면 우리는 우선 강동춘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술이란 뭐냐 술술 나온다고 술이라 했더냐,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 했더냐하며 시작했던 그 의 만담은 90년대 연변은 물론 동북삼성의 조선족 집거지구 각 극장을 초만원으로 이루게 했다.

술뿐만 아니다. 장타령 떡타령도 있다.

구수하게 펼쳐가는 그의 만담을 듣노라면 우리말이 참 묘한 데가 많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만담이나 재담은 민간예술에서 출발한 언어 예술이다.

지방공연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노래도 무용도 다 좋지만 특별히 만담이나 재담 소품들을 더 좋아 하는 것 같다.

해마다 펼쳐지는 음력설 야회에서도 사람들은 소품부터 찾는다.

그런데 정작 웃기는 당사자로서는 무대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오면 왠지 서글픈 마음이 많이 든다, 마치 민들레가 된 기분이다.

무용이나 상모 같은 예술은 음악을 바탕으로 우리의 민족문화를 피우는 꽃이라면 우린 그저 수수하게 이름없이 피고지고 자연을 수놓는 풀 같은 존재같다.

그런데 그 풀이 없으면 자연은 황폐하다.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서 우리는 장미꽃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아름다운데 가시가 있소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같은 예술이라 해도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예술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

사람이 모자라 혹은 없어서 한족애들에게 한복을 입혀서 아리랑을 춤추는 무용도 안타깝다.

그래도 다들 좋다 한다.

민족문화가 숨 쉰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일단 떴다하면 어르신들이 바래고 마중하고 신문에서도 대문짝만하게 대서특필하고 야단법석이다.

언젠가 전국 소수민족 구연 콩쿠르에 참가한다고 구연단에서 북경에 간적이 있다.

누구하나 잘하라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바래고 마중하는 이도 없다 그저 우리끼리 기차에서 먹을 도시락 싸들고 소리 없이 다녀왔다.

이옥희 선배는 중국 CCTV곡원잡담(曲苑雜談)이란 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다.

소수민족으로 더구나 우리말로 한 나라의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였겠지만 정작 연변에서는 잠잠하기로 고요할 지경이다.

아마 미처 보지 못해 그랬겠지 하는 자아 위안의 생각.

더 웃기는 것은 한족하나 없는 예술단이나 구연단에서 회의 때마다 꼭 한어로 발언한다는 것.

참 소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다.

아무리 잡필이라 해도 할 말은 해야겠다.

보이는 것만이 예술이 아닌 것 같다.

언어는 한민족의 바탕이고 혼이다.

한민족이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그 민족의 혼을 잃는 것이다.

아무리 타민족에게 치마를 입혀 춤추게 해도 언어가 없는 춤사위엔 혼이 없다.

고향이요, 민족이요, 전통이요, 하는 말도 자기의 언어 표현 몰라 한어로만 외친다면 그 말도 사실 혼이 없는 말이겠다.

자기의 언어를 잃고 한족처럼 한어를 쓰고 사는 만족이 생각난다.

기막힌 일이다.

글/ 김영식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저작권자 © 동포타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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