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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훌륭해도 모자람이 있기 마련이다

기사승인 [259호]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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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李冶)는 당나라 여류시인으로 이계란(李季蘭)이라고도 불린다.

이야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는데 6세 되던 해에 장미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과년한 나이인데도 아직 출가하지 못하니 마음은 한없이 헤매어 도네.” 그녀의 아버지는 시를 보고 딸의 뛰어난 글 솜씨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어린 나이에 이미 봄날의 들뜬 마음을 읊고리는 조숙함이 근심스러웠다. 그래서 이야의 어머니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이 아이가 총명이 과인하나 장차 조신한 부녀자 노릇을 하지 못할까 걱정이구려.”라고 했다.

그녀가 11살 되던 해, 아버지는 그녀를 섬중(剡中:절강성 일대)에 있는 옥진관(玉眞觀)에 보내버렸다. 도가의 여관(女官)이 된 이야는 이제 이계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녀는 수많은 시인, 문객들과 교류하였으며 시인 유장경(劉長卿)은 그녀를 여중시호(女中詩豪)라고까지 칭송하였다. 그녀의 뛰어난 문재(文才)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서 드디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마침내 황제는 어명을 내려 그녀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또한 “반희(班姬)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나 한영(韓英)보다 뛰어나다.”는 말로 이계란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훌륭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못내 아쉬웠던 점은 당시 이계란이 이미 노년에 접어든 나이였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준온(俊溫:아름다운 노부인)’이라고 호칭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자고로 아름다운 여인과 훌륭한 장수는 나이가 들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었다. 이에 황제는 그녀에게 많은 선물을 하사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계란은 황제의 뒤늦은 부르심을 못내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였다.

 

재주 없고 병 많은 늙은 몸이거늘

보잘 것 없는 이름 구중궁궐까지 닿았구나

송구한 마음으로 반백의 머리에 관을 올리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 닦아 늙은 얼굴 매만지네

 

동포타운신문 dongpotown@daum.net

<저작권자 © 동포타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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